골프 웨어를 입는다면 이들처럼

이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서 플레이어의 패션 센스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스포츠는 아마도 골프가 아닐까 한다. 

골프 웨어는 그 태동부터 해당 시대의 옷차림과 패션 트렌드를 리얼 타임으로 반영해왔기 때문이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가장 일상복에 가까운 형태의 옷을 입는 스포츠가 골프다.


골프가 태동하던 시기에는 남자들은 타이를 매고 스포츠코트를 입었고 여성들은 드레스나 긴 스커트를 입었다. 20세기의 골프 웨어를 10년 단위로 검색해보면 그야말로 해당 년도의 패션 기조가 골프 웨어에 다 녹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골프 패션은 21세기의 트렌드가 가미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2~3년간 스트릿 캐주얼 무드의 골프 브랜드가 등장하고 빠르게 트렌드로 확산되는 것도 골프 웨어의 역사를 알고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적 드레스 코드의 캐주얼화와 젊은 세대의 골프씬 유입이 골프 웨어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골프 웨어의 이런 특성 때문에, 일상에서의 패션 센스는 그대로 필드 위의 패션 센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도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플레이어라면 골프 복장에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프로 골퍼들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패셔너블하게, 혹은 스타일리시하게 골프 웨어를 입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골프 선수가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이 브랜드의 광고판이 된 현대에서는 더욱더 플레이어의 패션 센스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점점 더 효율적인 플레이를 위해 기능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골프 웨어도 진화하고 있기에, 그저 스폰서 브랜드가 제공하는 유니폼 같은 골프 웨어를 입는 선수들도 꽤 많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여전히 개인의 스타일 철학을 골프 웨어에 담아내는 플레이어들은 존재한다. 그들의 룩을 찬찬히 살펴보면 필드 위에서 어떻게 골프 웨어를 입을지에 대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미 패션 센스가 출중하신 분들이라면 그 힌트들을 금방 캐치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평소 패션에 그다지 자신이 없었던 분들이라면 이들의 룩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카피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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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Hogan & Arnold Palmer 벤 호건과 아놀드 파머

이들은 이미 전설이 된 사람들이지만, 1966년 마스터스 대회에서의 투 샷은 21세기 현재의 골퍼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골프 웨어는 그 시대의 패션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저 두 위대한 선수의 끝내주게 우아한 차림은 60년대 미국 남성 패션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기였기에 가능했던 룩이다. 벤 호건은 칼 같은 주름을 잡고 똑 떨어지는 기장으로 턴업을 한 회색 울 바지에, 깃이 우아하게 떨어지는 폴로셔츠를 입고 네이비 가디건에 뉴스보이 캡을 썼다. 아놀드 파머는 상하의를 모두 네이비로 통일하고 병아리색 폴로셔츠로 포인트를 주었다. 아놀드 파머의 신발에 살짝 보이는 킬티 장식이 아주 멋지다. 물고 있는 담배조차 낭만적이다. 뒤에 찍힌 갤러리들의 옷차림만 봐도 저 시대가 얼마나 우아한 시대였는지 가늠이 될 것이다. 현대의 골퍼들이 딱 저 시대의 옷을 입고 필드에 선다면 같이 라운딩을 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무조건 스타일에 대한 칭찬을 한마디씩 들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들은 정말 패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캐주얼 무드가 만연한 현대에 이렇게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가보는 것도 패션의 재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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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 Mickelson 필 미켈슨

필 미켈슨은 현역 프로 골퍼 중에서 꽤 고령인 축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룩은 여전히 꽤 클래식하고 점잖다. 최근의 골프 웨어 브랜드들이 온갖 화려한 컬러와 무늬의 옷을 마케팅하는 와중에서도 그는 항상 모노톤의 룩을 즐겨 입는다. 블랙 또는 회색 바지에 블랙 솔리드 폴로셔츠가 그의 시그니처 룩이다. 신발도 이에 맞춰 클래식한 구두 형태의 블랙 슈즈를 신는다. 예사롭지 않은 선택이다. 클럽과 옷 모두 캘러웨이다. 모자만 스폰서인 KPMG의 로고가 적힌 블랙 바이저나 캡을 쓰는데 이게 꽤 멋지다. 룩이 극도로 심플하니 오히려 브랜딩이 돋보인다. 심플하지만 우아하고 기품 있는 룩의 가장 좋은 예이다. 골프 웨어를 살 때 항상 고민이라면 그의 룩을 한 번 따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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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y Fowler 리키 파울러

파격적인 패션으로 유명한 그는 스트릿 캐주얼 무드를 필드 위에 접목시킨 장본인이다. 젊은 나이만큼 패션도 영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스트릿 느낌을 물씬 풍기는 스냅백 모자다. 클래식한 실루엣의 볼캡 형태가 주류일 때, 래퍼들이 쓸 법한 모자를 쓰고 나왔다. 스폰서인 푸마도 스트릿 무드의 로고를 넣어서 모자를 만들어 주는 것이 꽤 귀엽다. 모자만으로도 룩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리키 파울러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옷의 컬러도 화려하고 비비드하다. 골프 슈즈도 가장 최신의 기술로 디자인된 푸마의 신발을 신는다. 그의 룩이 최근 등장하는 캐주얼 룩의 골프 브랜드들에 큰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최근의 스트릿 패션 무드를 골프 웨어로 표현하고 싶을 때 참조하기 가장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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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Poulter 이안 폴터

이제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영국 출신의 이 골퍼는 체크무늬 바지가 시그니처다. 그가 무슨 브랜드를 입는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체크무늬의 바지를 자주 입지만 컬러 사용이 굉장히 대담하다. 영국인이 가진 펑키함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조금 과장하면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떠오른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어쨌든 자신만의 스타일이 아주 확고하다는 점에서 리스펙을 날리고 싶은 선수다. 누가 봐도 아 저것은 이안 폴터의 룩이군, 하고 알 수 있다. 그의 차림들을 쭉 보고 있으면 그가 자신의 패션을 상당히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심심한 룩이 지겹다면 그의 스타일을 응용해보자. 쉬운 스킬은 아니지만 컬러만 조금 무난하게 쓴다면 체크무늬의 바지는 좋은 스파이스가 될 수 있다. 상의는 꼭 체크무늬의 컬러와 같은 계열의 솔리드 컬러를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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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Horschel 빌리 호셸

아메리칸 스타일의 전형이다. 랄프 로렌에서 의류를, 풋조이에서 신발을 협찬 받고 모자만 클럽과 같은 브랜드의 모자를 쓰는데, 최근에는 PXG의 모자를 착용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모자까지 폴로 랄프 로렌의 골프 로고가 들어간 제품을 쓴 적이 있었는데 사실 스타일만 생각하면 이 편이 훨씬 멋있다. 클럽을 스폰서링 해주는 브랜드나 또 다른 스폰서인 벨로시티 글로벌 측에 의뢰해서 조금 더 클래식한 형태의 모자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는 리키 파울러의 승리다. 풋조이의 브로그 옥스포드나 새들슈즈 디자인을 애정하는 것을 보면 그가 꽤 클래식한 룩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본 컬러의 바지에 컬러풀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폴로셔츠를 자주 입는다. 그가 굉장히 스타일리시한 골퍼는 아니지만 랄프 로렌의 골프 라인을 선택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고 본다. 여러가지 브랜드를 믹스해서 입을 때는 딱 이 정도가 좋다.


실력이 외형을 커버하는 시대는 지났다. 핸디캡이 싱글이라면 그까짓 골프복쯤이야 좀 못 입어도 멋있어 보일 테지만, 스타일도 핸디캡에 걸맞는다면 더욱더 멋있어 보이지 않겠는가. 만년 백돌이라 하더라도 골프도 못 치면서 옷만 잘 입는다는 소리 따위는 무시해도 상관없다. 분명 그것은 패셔너블한 당신에게 날리는 질투의 멘트일 것이다. 언젠가 실력으로 갚아주자. 골프 실력은 연습으로 늘릴 수 있지만 패션 센스는 이 글을 읽지 않는다면 어지간해서 늘리기 쉽지 않을 테니. END 



글 강원식